역명 유래
온천동(溫泉洞)의 유래가 된 동래온천장에서 온천이 자연용출 한 시기는 신라시대부터로 본다. 그러나 산저리(속칭 차밭골)와 장전리 일부를 합하여 행정구역상의 온천동(溫泉洞)으로 독립시킨 것은 1910년 일제강점 이후가 된다. 그 이전은 금산마을(또는 금정마을)과 온정리 등 자연마을의 이름으로 불려졌다 . 온정원(溫井院)이라 하여 공용으로 여행하는 관원을 위한 공영의 여관이 있었을 뿐 집단적인 취락은 형성되지 않았다. 지금은 온천이 나면 위락시설을 갖추어 손님을 받아 돈을 벌어들일 궁리를 할 테지만 그때로서는 고관대작과 병자들이 오가서 민폐만 생길 뿐이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는 지금의 온천동 일부가 서면의 산저리에 속하고 일부는 북면의 장전리에 속했다.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온천시설을 갖춘 바도 있었지만 대중성이나 영리성을 띄지 못했다. 동래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들이 밀려들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위락시설을 갖추고부터다. 1942년 부산부 동래출장소설치로 온정리라 하고, 1947년 일제식 동명 개정 때 미남·산저정의 두 마을을 합하여 온천2동으로 개정하였다. 1979년 온천2동을 온천2,3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뉴트로 감성 가득한 금강공원과 식물원 (출처: VISIT BUSAN)
부산시민공원이 생기기 전,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은 바로 이곳이었다. 모든 부산 사람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금강공원과 금강식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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