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명 유래
초량동(草梁洞)의 유래는 1678년 초량소산(草梁小山)인 지금의 용두산 주위에 왜관이 설치되기 이전, 지금의 부평동에 어민들이 얼마간 살았을 뿐 초량 이남은 사람이 살지 않은 억새풀과 띠풀의 초원지대로「샛디」라하여 초량이었다. 지금의 중구· 동구·서구지역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초원지대였다. 이 초원지대인 풀언덕을 초량이라 했는데 그 초량이란 이름이 맨 먼저 쓰인 곳은 그때의 사천면(沙川面)인 지금의 서구 일대였다. 그뒤 지금의 초량을 신초량이라 하게 되었다. 그러자니 동래부사 정현덕은 같은 고을에 같은 이름이 둘 있을 수 없다하여 신초량을 초량이라 하고, 구초량을 부민동이라 하게 했다고 한다. 그때의 부민동은 지금의 부민동에서 남부민동까지를 말했고 신초량인 초량은 지금의 초량에서 남쪽으로 용두산 끝자리까지를 말했다. 풍수상으로 부산의 지형은 엎드려 있는 소의 모습인 여와우형(如臥牛形)이라 하여 풀밭이 있어야 하기에 초량이란 명칭이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한편, 초량동(草梁洞)은 조선후기 해정리(海丁里)라고 하였으며, 이 지역에는 고분이 있었고 해정리의 해변은 노송이 울창하여 이곳을 일인들이 기석빈(棋石賓)이라 불렀다. 이는 바로 물로 씻은 깨끗한 돌들이 널려 있어서 흡사 바둑돌과 같았다는데서 불리어진 이름이다. 초량동은 1959년 시조례에 의해 동개편 때 초량1,2,3,4,5동으로 나누었다가 1970년에는 초량4동을 인구의 증가로 초량4동과 초량6동으로 분동하였고, 초량5동은 인구감소로 인해 1995년 10월 초량3동에 흡수·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이야기로 피어난 어제의 기억 초량이바구길 (출처: VISIT BUSAN)
부산역을 빠져나오면 부산의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산역사 길 건너 좁은 골목길에서 만나는 옛백제병원과 남선창고터가 초량이바구길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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